11년째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해온 한숙희씨(58·가명)가 14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비둘기들에게 빵부스러기를 나눠주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는 “뭘 줄 수 있어요? 돈이 있으면 사우나 가서 씻으면 제일 좋은데…”라고 말했다. 이어 “평소엔 지하철역 화장실이나 관공서 장애인화장실에서 씻는데 어제는 머리에 비누칠을 하자마자 경비원이 들이닥쳐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밤엔 어디에서 자느냐고 묻자 “밤엔 (화장실 등에서)자는 게 아니라 잠깐잠깐 조는 것이고, 낮에 지하철 타고 자거나 한다”고 답했다. 노숙인 시설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느냐는 물음엔 “난 자유로운 게 좋다”며 고개를 저었다. 광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비둘기들에게 한동안 빵부스러기를 나눠주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후가 되자 광장은 오가는 행인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있던 남성노숙인 중 한 명이 기자의 시선을 느꼈는지 쫓아와 “라면 사먹게 2000원만 달라”고 졸랐다. 광장 중앙 롯데마트 앞 계단엔 빨간 점퍼 차림의 여성이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 않은 듯 엉켜 있었다. 여성 앞에 앉아있던 두 명의 남성노숙인이 “머리라도 묶어라” “저리 가라”며 손사랫짓을 했다. 여성이 웃기만 할 뿐 말을 듣지 않자, 자신들이 자리를 옮겼다.

광장의 밤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종이상자 한 장을 요 삼아 자는 노숙인들로 채워진다. 다 해진 신발 한짝이 벗겨져 저만치 굴러다니는 것도 모른 채 잠든 이도 보였다. 광장 한쪽에서 만취한 듯 혀가 꼬인 한 여성이 다른 남성 노숙인들 속에 섞여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겨울철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200명의 노숙인이 이곳 광장과 인근 노상에서 잠을 잔다. 그 중에는 여성도 있다.

이정숙씨(47·가명)도 그 중 한 명이었다. 2010년부터 최근까지 사시사철 이곳 롯데마트 앞 계단을 떠나지 않았다. 부러진 안경을 쓰고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껴입은 차림이었다. 누군가 말이라도 건네면 우산으로 막으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늘 수첩에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뭔가를 적곤 했다. 끼니는 서울역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앞에 놓고 살이 나간 우산 속으로 몸을 숨겼다.

서울역 롯데마트 앞 계단에 앉아 있던 남성 노숙인이 빨강색 점퍼 차림의 여성을 피해 자리를 옮기고 있다.

지난 7월 그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여행가방에 가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사이, 배가 잔뜩 불러있었다. 임신 7개월 정도로 보였다. 서울시 노숙인 정신건강팀이 겨우 설득해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출산에 대비해 가족을 찾아냈다. 그러나 초음파 검진 결과 아기가 아니라 커다란 혹이었다. 악성종양 여부를 가리기 위해 MRI 촬영이 필요하지만 정숙씨는 누군가 손을 대면 소리를 지르며 완강히 거부했다. 정신과적 치료가 우선 필요했다. 그는 현재 서울 모 의료원 정신병동에 입원중이다. 주치의는 “질환이 오래돼 약 반응이 쉽게 나타날 것 같지 않다”면서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정숙씨는 입원 전 잠시 머문 고시원 방 여기저기에 대변을 봤고, 가방 속엔 온갖 쓰레기를 담아놨다.

그의 지난 삶이 궁금했다. 15년만에 정숙씨 소재를 알게 된 언니는 전화인터뷰 중 수차례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이 가엽다”고 했다. 1남5녀 중 넷째로 태어난 정숙씨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어머니가 손수레에 야채를 싣고 다니며 팔아 일곱 식구가 겨우 살았다. 언니는 고교 진학도 포기한 채 엄마를 도왔다. 조용한 성격의 정숙씨는 그래도 고교를 마치고 취업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나쁜 시력 탓인지 일이 굼뜨다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들어간 직장마다 금방 나왔다. 언니는 “집에 있는 동안 정숙이는 아무 일도 아닌 걸로 버럭 화를 내곤 했다. 그때 알아채고 치료를 받고 했어야 했는데…”라며 흐느꼈다. 정숙씨는 15년 전 오빠와 다툰 후 집을 나왔고 이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다.

지난 6일 정신병동에서 만난 환자복 차림의 정숙씨는 비쩍 말라 불룩 튀어나온 배만 도드라져 보였다. 말수가 적었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는 “집을 나온 후 일거리를 찾아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다 돈이 다 떨어졌고 월세방에서도 쫓겨났다”고 말했다. 또 “퇴원하면 해야 할 일이 많다. 취직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돈을 벌어 뭘 하겠느냐고 묻자 “먹을 것을 사고, 살 곳도 얻겠다”고 답했다. 그는 광장에서 지낸 이유에 대해 “일을 해 돈을 벌려면 시설에 들어가야 하는데 규칙이 너무 많아 갈 만한 시설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임신 18주째인 김윤희씨(34·가명)도 서울역광장 노숙인이다.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2년 전에도 아기를 출산해 아동보호기관에 보내졌는데 그때도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임신부의 몸이지만 여전히 술·담배를 많이 한다. 술에 취해 기물을 파손, 경찰에 연행된 적도 있다. 지난 1일 만난 그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다쳤다”고 말했다. 박연화 서울시 노숙인정신건강팀장은 “윤희씨도 조현병으로 입원한 전력이 있다”며 “지금은 좀 나아진 편이지만 판단력은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2010년부터 사시사철 서울역광장 계단에서 두꺼운 겨울옷을 껴입은 채 노숙하다 난소암이 생긴 이정숙씨(47·가명). 지난 6일 입원 중인 서울의 한 의료원 정신병동에서 기자와 면담한 후 병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윤희씨가 노숙자로 전락한 것은 불우한 환경탓이 크다.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가족과 불화를 못 견디고 가출했다. 도시를 배회하다 2013년 2월초 그가 찾아든 곳이 서울역광장이다. 광장에 나타난 지 한 달 만에 임신증세를 보여 서울역광장 응급구호방에서 지내다 11월 아들을 낳았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윤희씨 어머니는 아기를 아동기관에 맡기고 윤희씨만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윤희씨는 지난 7월 다시 광장에 나타났다. 얼마 안돼 또 임신한 걸 알게됐다. 처음엔 낙태를 원하더니 요즘은 “낳아서 키우겠다”고 말하는 등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그가 지금 사는 곳은 서울역 부근 한 남성 노숙인의 쪽방이다. 일정한 주거가 없다보니 이전에도 남자들의 쪽방에서 지낸 날이 많았다. 산부인과 검진이 예정된 지난 15일, 윤희씨는 “병원에 가기 싫다”며 하루종일 모습을 감췄다.

이튿날 서울역 인근인 남대문로 쪽방촌을 방문했다. 지은 지 오래돼 쪽방은 낡고 열악했다. 물청소를 한 듯 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배인 악취를 없애지는 못했다. 보통 신장의 남성도 두 다리를 쭉 펴고 자기 힘든 0.7~1.2평의 비좁은 쪽방 50여 개가 4층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다른 건물들도 사정은 비슷해 보였다. 이곳에서 10년간 거주한 주민 박상철씨(62·가명)는 노숙인 간의 성거래에 대해 귀띔했다. 그는 “광장에서 남성노숙인들과 같이 술 마시다가 돈을 받고 쪽방까지 따라오는 경우가 수시로 있다”며 “(주고받는 돈은)하루 2만~3만원 정도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자들은 돈이 떨어질 때만 노가다(일용직)를 나간다”면서 “그렇게 몇푼 벌면 그걸로 방세(월 24만~25만원) 내고 술 마시고 여자도 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리 노숙 후 지금은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윤숙자씨(38·가명)는 노숙생활 중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어 외로운데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한 것이지 성적 욕구때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노숙자들은 성추행·성폭행 등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해서 원치않는 아기가 태어나기도 한다. 지난 2월 최미숙씨(34·가명)는 낳은 지 40일 된 아기와 함께 교회 안에서 숨어 지내다 발견됐다. 미숙씨는 TV 속 등장인물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등 정신과 질환이 의심됐다. 알아보니 고3때부터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다닌 전력이 있었고 가출 후 노숙생활을 했다. 아기는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미숙씨의 어머니는 “어떤 개입도 하고 싶지 않으니 딸 일로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윤숙씨 모자가 갈 곳은 없었다. 미숙씨는 의사 진단에 따라 정신병원에 입원했지만 퇴원후 종적을 감췄고, 영양실조 치료를 마친 아기는 아동보호기관에 맡겨졌다. 미숙씨는 거리에서 낳은 첫째 아이와도 그렇게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