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대전 유성구 신성동의 한 도로변 농장. 도심 속에 자리 잡은 너른 밭에서 도시농부들이 고추 수확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탐스럽게 영근 풋고추를 바라보는 도시농부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이들은 노숙인 쉼터이자 자활시설인 동구 정동 ‘벧엘의집’의 영농반원들이다. 벧엘의집은 2년 전 도시농부학교를 시작했다. 노숙생활을 하거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갈 곳을 찾아 떠돌다 찾아온 벧엘의집 식구들에게 자활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한 시도였다.

벧엘의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이나 실직자들은 대부분 고령의 나이와 건강 문제를 안고 있다. 시설에 들어와 자활을 준비해 보지만 기존 취업시장에는 재진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시에서는 더더욱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없었다.

벧엘의집을 운영하는 원용철 목사(50)가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도시농업이었다. 조그만 땅이라도 있다면 이들이 땀 흘려 일한 만큼 정직하게 벌어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였다.

지난 7일 대전 유성구 신성동 노숙인 쉼터인 ‘벧엘의집’ 농장에서 영농반원들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첫해 벧엘의집은 충남 금산군에 작은 텃밭을 빌려 도시농부학교를 열었다. 기본적인 농사일을 배우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지난해에는 대전 도심에 1650㎡(500평) 정도의 땅을 마련해 실제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기독교대한감리회 남부연회가 소유한 땅 1만6500㎡(5000평)를 무상 임차해 본격적인 ‘농사 실험’을 시작했다.

현재는 7명의 영농반원들이 이곳에서 밭을 일구고 고추와 땅콩, 고구마 등 각종 작물을 심어 가꾸고 있다. 농장에서 만난 박모씨(50)는 “올해는 여러 작물을 심어 보고 병충해 없이 토양에 맞게 잘 자라면서 소득이 되는 작물이 어떤 게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며 “닭도 50여 마리를 키우고 있고 앞으로는 양봉도 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함께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무상 임차한 땅의 일부를 주말농장으로 분양했다. 주말농장 분양과 관리로 생기는 수입도 모두 농장을 일구는 도시농부들의 몫이다. 최근에는 텃밭 한쪽에 심은 마늘을 처음 수확해 내다 팔았다. 손에 쥔 돈은 총 40여만원이 전부지만 이들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올해는 첫해라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앞으로는 판로를 개척하고 생산량을 늘려 수익을 키워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품고 있다.

2년 전 노숙생활을 하다 벧엘의집에 온 송모씨(62)는 “첫 수확을 하고 나니 새삼 ‘땀 흘려 일한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젊어서는 사업을 하며 큰돈을 벌어보기도 했지만 이제 나이 먹고 가진 것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